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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이 된다.

 

어느덧 구로에서 시작한 서울살이가 8년이 되었다. 여기에서 이렇게까지 오래 머무를 계획은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떠날 계획도 없었기는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울의 집값은 사회 초년생에게 가혹했고, 우리의 첫 시작에는 그리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진 않았다.

 

낯설었던 공간은 시간이 쌓이며 추억이 되었다. 때로는 뚜벅이로, 날이 좋은 날에는 따릉이로, 차가 생긴 이후에는 조금 더 멀리까지 나들이를 다니며 익숙한 공간은 넓혀져갔다. 지난 해에는 궁동에 주말 텃밭도 분양을 받아 도시 농부 흉내도 한 번 내보았다. 이제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여기에 우리 밭이 있었지 하며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안양천은 단골 나들이 코스였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우리는 따릉이 1년 정기권을 끊어 주말마다 도림천과 안양천, 한강까지도 내달리곤 했다. 그만큼 익숙한 곳이 되었지만 해마다 조금씩 바뀌어가는 부분들, 그리고 원래부터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던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 해봤던 어떤 여행과도 너무나 달랐다. 장소도 목적도 계기도 완전히 생소한 조합이었다. 주말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6월의 어느날 색다른 제안을 받았다. 바로 구로를 여행해보라는 것. 모임이나 약속의 장소로서 목적지가 될 수 있겠지만 여행지로서의 구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곧 여행의 설렘을 느꼈다. 익숙했던 공간을 새롭게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행 준비: 짐을 챙기는 것부터가 여행이다.

짐을 챙기다보니 준비물이 산더미가 되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지에 가서 손에 익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편리함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하게 될까 물건들을 챙기며 여행의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해도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벌어지고, 그것이 또 여행의 재미이다.

 

코스 1: 함께 걷기의 유쾌함

첫 행선지는 안양천 고척교였다. 7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안양천에 방문할 일은 드물다. 응당 그 시간에 하천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적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잔디광장에 사람이 가득 찰 만큼 인파가 몰렸다. 오늘 개최되는 구로 탄소제로 걷기 오프라인 행사가 연 4회, 상반기 6월과 7월 그리고 하반기 9월과 11월에만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몸풀기를 하고 출발 신호에 따라 일제히 출발하는 모습은 흔히 보기 어려운 장관이었다. 곳곳에 진행요원들이 배치되어 경로를 안내하는 한 편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활동도 하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아기와 함께 걷기에 나선 가족들도 보기가 좋았다.

 

코스는 고척교에서 시작해 오금교를 거쳐 신정교에 조금 못미치는 반환점을 돌아 다시 고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반환점에서는 경품 추첨을 위한 응모권을 나누어주고, 돌아와서는 응모함에 넣으며 작은 행운을 기대하게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당첨은 되지 못했다. 대신, 안양천의 햇살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작은 동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소한 행복이 아쉬움을 금방 털 수 있게 해주었다.

 

 

코스 2: 예술의 도시, 구로

 

가볍게 아침 운동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문화공간이었다. 구로에도 다양한 문화시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우리 동네 주변에는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이 있어 종종 공연을 보러 간다. 안양천 주변에 특색있는 예술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서울아트책보고는 전국 최초 아트북 도서관이자 북카페이다. 고척 스카이돔 지하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부러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숨은 아지트 같은 느낌을 주어 더욱 흥미롭게 한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아트북이 아니었다. 서울아트책보고에는 갤러리도 있어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는 <움직이다, 상상하다, 다르게 보다!> 전시가 운영되고 있다. 우연히도 전시의 테마가 우리의 여행 컨셉과 비슷해 신기했다. 단순 관람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라, 아직 예술이 낯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코스 3: 나만 알고 싶은 휴양지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일정을 돌아다닐 수 있게 했던 힘은 사실 마지막 장소에 대한 기대감에서 오지 않았을까? 안양천에는 또 하나의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 있다. 구로 피크닉 가든이 바로 3번째 코스의 목적지이다. 주섬주섬 가져온 짐을 풀어 그늘을 만들고 우리만의 힐링 공간을 준비하는 동안, 지나가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피크닉존을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는지 질문 받곤 했다. 친절히 서울시 예약 누리집에 가서 예약하고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을 드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예약이 더 힘들어질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은 결국에 모두가 알게 되어있다. 그냥 오늘은 앞으로의 일은 고민하지 말고 지금의 여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에필로그: 반나절의 낭만은 그렇게 끝이 났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 우리의 짧은 여행도 아쉽지만 막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일상의 공간을 여행지로서 재발견하며 탐험했던 낭만의 기억이 남았다. 이것은 다시 우리가 일상의 무게를 이겨내고 다음 여행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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